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 위안부 (문단 편집) == [[수요집회]]와 반응 ==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통상적인 이미지는 대체로 오해다. 일본은 고노 담화 전후로 수 차례 분명한 단어를 선택해 사과하였고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서도 사과문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정대협측은 이러한 사과를 끝끝내 몇 차례 거절하였으며(대표적인 예가 정부 차원의 인정과 보상을 요구한 아시아여성기금이다) 연구자들은 (위안부 피해자 본인이 아닌 정대협이) '과연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추구하고 있는지' 회의감을 가진다. 이미 한일기본조약에서 배상은 이뤄졌고 사과 역시 고노 담화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과 이후의 일 정부의 공식적 태도는 역사와 사과의 부인이었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매주 수요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정기 집회를 하고 있다. 이 집회는 [[일본인]] [[변호사]]에 의해 처음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데, 이미 위안부 피해자들이 다들 사망하거나 건강이 나빠져서, 현재는 한일 양국의 위안부 대책 여성단체 회원들이 주도한다. 특히 일본 내 기독교인들이 대거 참가하여 [[목사]], [[사제(성직자)|사제]], [[수도자]] 등 기독교 성직자들이 많이 보인다.[[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428|#]] 단,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는 잠시 집회를 연기하였으며 [[도호쿠 대지진]] 때는 집회시에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수요집회 참여 방법으로는 [[http://www.womenandwar.net|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참가신청을 하고 가거나 참가신청을 하지 않아도 수요일 12시 [[주한일본대사관]] 앞으로 오면 언제든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 집회에 한국은 물론 [[중국]]본토나 [[대만]], [[홍콩]] 등에서 [[중국인]] 피해자나 가족들도 대거 참가하기도 한다. 2011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뉴욕]] 퀸스의 [[홀로코스트]] 센터에서 [[http://www.ytn.co.kr/_ln/0104_201108142138243961|위안부의 참상을 알리는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렇게 양자협의를 거절하면서도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는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평화비를 세우겠다고 발표하자 일본은 우리 정부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928105958|평화비를 세우는 걸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같은 날에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372687|'''인간사슬로 외무성을 포위''']]하겠다고 한다! 동시에 전세계 곳곳에서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1/12/15/0601080100AKR20111215002700071.HTML|국제연대시위]]도 열렸다. 또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382389|위안부 피해자들을 뉴욕에 초청, 나치와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겠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girlstatue.jpg|width=400]] 수요집회 '''1,000회'''가 되는 12월 14일 예정대로 평화비가 세워졌고 그날 집회에는 약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집회를 하였다. [[도쿄]]에서도 인간사슬로 외무성을 1시간 동안 포위했으나 그 앞에서 우익단체들이 맞불시위를 벌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142145595&code=940100|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1000회 수요집회를 기념하여 인간띠를 만들었던 전후사정과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한 자료(일본어 해석 필요). WAM(Women's Active Museum)의 모습이 보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이 있는 곳. 참고로 피해자들의 국적은 [[대한민국]], [[중국]]은 물론 [[말레이시아]], [[호주]] 심지어 [[네덜란드]]도 있다! 2012년 연말에는 한 청년이 수요집회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본을 향해 "응답하라 일본!"이라는 제목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12/30/0200000000AKR20121230039900004.HTML|1인 시위를 하여 잠시 화제가 되었다.]] 그가 서있는 곳은 일본 외무성 앞인데, 보통 국회 앞이나 수상 관저 등에서 이루어지는 관련 시위를 생각해볼 때 외무성 앞 1인 시위는 기발한 발상이었다는 것이 현지 운동가들의 전언.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2/12/31/20121231022859.html|관련기사]] 서구권에서는 그다지 관심이 크지 않은 편이였으나 한국과 중국, 홍콩 등 아시아권에서의 계속된 홍보로 이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관심이 크지 않은데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왜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618438.html|제3국에 남의 나라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냐는 인식도 적지 않은 편이다]]. 2016년 이후에는 상기한 한일외교장관회담 결과에 따라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평화비가 철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정확히 어떻게 해결한다고 언급하진 않았으므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방안이 채택될 듯 하지만... 피해 당사자 측과 시민단체 측에서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만큼 크게 만들지는 못할 망정 무슨 이전은 무슨!!!"'''이라고 반응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대한민국 정부]] 측에서 세운 것도 아니고 시민단체에서 정부 돈 한 푼 안 받고 직접 조성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그거 이전하면 어떨까?' 하는 정도로 공문 한 장 보낼 수는 있겠지만 강제로 이전은 못한다. 게다가 일본 언론들이 벌써부터 김칫국 드링킹을 하며 위안부 평화비에 대한 언플이 상당히 심해지고 있는 것이 포착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이걸 이전시키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서도 엄청난 무리수이다. [[일본 정부]]에서도 '우리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다, 모든 사항은 합의문에 나온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 우리는 그런 이면 합의를 안 했고, 만약 했다면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라면서 진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 [youtube(4KVJYXUXBEM)] || 참고로 [[네덜란드]]에서도 우리나라 위안부 피해자들의 '수요 집회'같은 모임이 2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이 집회는 1994년 한 [[시민단체]] 주도로 처음 시작됐으며, 침략의 과거사를 외면하는 일본정부를 규탄하기 위해서 매달 둘째주 [[화요일]]이면 일본 대사관 앞에 모여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sid1=&oid=052&aid=0000648629|네덜란드서도 20년 간 "日 과거사 사죄하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